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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하성 교수가 말하는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정의로운 한국 자본주의는 가능한가?


대한민국은 왜 계획경제로부터 시작했을까요?


자본주의의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살아남으려면 왜 임금을 높이는 것 보다는 금융소득을 늘려야 하는 걸까요?


왜 한국인이 정말 머리가 좋은 민족일까요?


외환위기를 왜 자본가들이 반기는 걸까요?


공정한 부의 분배라는 것은 무엇이고 정말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화폐가치 하락이 부의 불평등을 불러온 것인가요?


노조가 정말 좋은 것일까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왜 자꾸 벌어지는 것일까요?


왜 노동자는 항상 손해보는 구조일까요?


국가는 왜 자꾸 비정규직을 늘리고 정규직을 줄이고 있을까요?


왜 노동자의 삶은 긴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막다른 길일까요?


열심히 일해도 왜 세상은 점점 불평등 해지는 걸까요?


고용의 불평등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이 무슨 결과를 초래하고 있나요?


경제성장이 왜 평균적인 삶의 질을 높히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왜 앞으로는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하게 심화되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복지를 통한 재분배가 가능한 것일까요? 낙수효과는 정말 존재하나요?


복지예산을 늘리면 국가의 디폴트 위기가 증가할까요?

내가 보기에 불평등을 그나마 좀 해소하려면 주주자본주의(혹은 올바른 도덕적 교육을 받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자본주의적 올리가르히라고도 볼 수 있겠다)로 나아가야 하지만 그 또한 평등 하지 않다. 이유는 대중은 항상 무지하기 때문에 험난한 주식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식이 쫌만 떨어져도 팔려고 하며 주식을 투자가 아닌 투기로 대하고 주식시장에서 한탕주의가 성행한다면 절때 대중은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가 없다. 또한 주식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실을 알지만 남들이 몰라야만 가능하다. 그것이 내가 주식을 사놓은 이후에 주가가 올라가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기 때문에 모두가 주식을 해서 모두가 지속적으로 행복해 지는 사회는 절때 존재할 수가 없으며 시스템상 절때 불가하다. 누군가는 결국 그 주식을 들고 폭락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반드시 경제지식을 쌓아야만 앞으로의 무자비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투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5년이상 긴 시간을 바라보면서 하는 것이지만 대중은 항상 성미가 급하고 단기적인 수익만을 생각하는 어리석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부의 불평등이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대중에게 시장이 철퇴를 가하는것이라고 본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진정한 정의이며 아는 만큼 수익을 가져가는 진정한 부의 평등이라는 아이러니하고도 역설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장하성 교수는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주식 투자를 대중에게 권하기엔 투기를 권한다는 비난의 여론을 받을 자신이 없어 아주 살짝만 언급하는 것이라 본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는 것...

나는 자본주의를 옹호하지만 매우 위험한 시스템인건 맞다.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현대의 인간은 반드시 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이 철학자 마저도 돈 때문에 결국 강의를 하지 않는가? 이 사람 스스로도 이미 자본주의에 길들여졌다.